라이더 캐롤 지음 (한빛비즈)
새해 작심삼일 다이어리
어릴 때부터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동네 문구사만 가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시내에 있는 잡화점(지금의 아트박스 느낌이다)을 그렇게 드나들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색색의 볼펜과 형광펜을 사서 예쁜 필통에 채워 넣으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계획을 세워서 한다길래 예쁜 다이어리도 수시로 바꿔서 샀다. 돌아와 책상에 앉아 새로 산 다이어리를 펼치고 여러 가지 색깔의 볼펜으로 계획표를 최선을 다해 예쁘게 꾸미고 나면 이미 1등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취했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면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공부에 다이어리고 뭐고 짜증만 났던 기억이 있다. 그 버릇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12월만 되면 올해는 어떤 다이어리를 구입할까 설레어서 인터넷 쇼핑을 다 뒤졌다. 예쁜 다이어리는 매년 왜 이리 많이 쏟아지는 것인지 선택 장애로 한 달을 고민한 끝에 하나를 선정하여 구매하고 나면 택배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다이어리가 온 날은 올해는 진짜 1년 동안 잘 써보자는 마음으로 올해의 목표도 세워보고 매달 이벤트도 작성해본다. 그렇게 1월 첫 주는 매일 빼먹지 않고 내가 어디를 가던 가방에 꼭 넣어서 꺼내보고 또 꺼내보고 했다. 설날 연휴가 지나면서 살짝 다이어리에 대한 관심이 식지만 3월은 또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기도 적어보고 며칠을 또 열심히 끄적여본다. 그러다 어느 날 다이어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왜 이렇게 가방이 무겁지 생각하며 다이어리를 가방에서 꺼내어 책상 서랍에 넣어둔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어리가 나에게 필요 없겠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다이어리를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내 삶의 부족한 부분이 계속 느껴졌다. 일단 나는 꼼꼼하지 못해 약속 등을 잘 잊어버렸고, 잘 기억하기 위해 메모를 했지만 그 메모도 어디에 해두었는지 결국은 기억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던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지금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 일기를 쓰고 싶을 때도 어디에 적어야 할지, 적고 나도 내가 잘 보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포기할 때도 있었다. 나에게 딱 맞는 기록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때 불렛저널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주의력결핍장애 진단을 받고 스스로 부족하거나 뒤쳐진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여러 형태(플래너, 일기, 투두 리스트, 스케치북 등)를 하나로 결합한 효과적인 시스템인 불렛저널을 만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부족함을 한꺼번에 채워주는 시스템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초등학생도 따라 할 수 있는 작성법
내가 기록이 힘들었던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 찾을 수 있었다. 가계부 따로 일기 따로 플래너 따로 각자의 기능을 가진 노트들을 함께 관리하기란 나에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불렛저널은 아무 노트나 상관없다. 노트와 펜만 있다면 일기장도 가계부도 플래너도 될 수 있다. 불렛저널은 크게 색인, 퓨처 로그, 먼슬리 로그, 데일리 로그로 이루어진다. 데일리 로그는 하루 중 발생하는 할 일, 이벤트, 메모를 기록하면 된다. 먼슬리 로그는 달력과 할 일 두 페이지로 나누어 달력 페이지에는 이벤트 등을 기록하고, 할 일 페이지에는 이번 달의 해야 할 일을 적고 우선순위를 생각해본다. 지난달 완료되지 않은 일들 중 중요 내용이 있으면 이번 달 할 일 페이지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퓨쳐로그는 이번 달 이후의 구체적으로 확정된 일을 저장하는 곳이다. 저장하고 싶은 메모 혹은 기록들은 기호를 사용하여 빠르게 생각을 정리/분류가 가능해 우선순위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색인, 각각의 로그들 외에도 새로운 컬렉션을 작성하여 어떤 것이던 기록할 수 있다. 그리고 매달 노트에서 의미 없는 내용을 걸러내는 이동 과정이 있다.
나에게 가장 유용했던 방법은 색인, 페이지 번호 매기기였다. 회의 내용이 될 수도 있고, 아이 학원 상담 내용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지금 수강하고 있는 온라인 강의 노트,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을 어디에 적을지 생각하지 않고 노트에 바로 적고 페이지만 작성하면, 색인에서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었다. 페이지 번호 연결하기 또한 내가 잘 사용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하나의 컬렉션이 1~5페이지에서 시작된다. 그 후 다른 관심항목을 작성을 하였는데 다시 그 컬렉션이 작성하고 싶다면 25~30페이지에 작성할 수 있다. 이때 5페이지 옆에 25라고 적으면(예시 5/25) 색인을 보지 않고도 같은 컬렉션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이 불렛저널 하나로 다 해결이 된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책의 저자는 불렛저널링이 해야 할 일을 작성하는 일 그 이상을 포함한다고 한다. 따라서 작성에 앞서 마음 목록표부터 써 볼 것을 추천한다. 마음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생각을 빨리 조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순한 기법이라고 한다. 종이 한 장을 가로로 놓고 3등분을 한 후 가장 왼쪽부터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나열하고 가운데는 해야 할 일을 나열한다. 그리고 오른쪽 여백에는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나열한다. 모든 항목별로 두 가지 질문은 해본다. 이것이 중요한가? 그리고 이것이 꼭 필요한가? 만약 그렇지 못한 항목이 있다면 우리 삶에 더 이상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줄을 그어 지워버린다. 모두 완료하고 나면 해야 할 일(책임), 하고 싶은 일(목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간결해질 것이다.
매일 작성하는 데일리 로그를 활용하여 아침(계획하는 시간)과 저녁(검토하는 시간)에 일일 성찰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동 과정으로 월간/연간 주기적은 성찰이 가능하다.
불렛저널을 통해 의도를 가지는 목표를 정해보자. 단기(1시간, 2일)로 시작하여 중기목표(3주, 4개월) 마지막으로 장기 목표(5년) 내에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적는다. 각각의 항목을 검토해서 불필요한 항목은 제거하고 남은 항목들은 우선순위를 정해 본다. 그런 다음 해야 할 일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실행 가능하고 아주 뚜렷한 단기 목표를 설정한다. 계획된 목표들은 할당 시간 안에 완료하도록 해야 한다. 완료 후에는 그것이 성공이 되었든 비록 실패였든 성찰을 하고 다시 목표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 그 외에도 감사일기, 5WHYS 기법을 통한 문제 해결, 휴식 계획 등 불렛저널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는 자세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불렛저널은 계획 - 실행 - 평가 - 개선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단순히 할 일 작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정말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생각을 간결하게 만들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 상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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